中訓大夫 太僕卿 昌寧曺公 諱 興 設壇 碑銘 幷序(중훈대부 태복경 창녕족공 휘 흥 설단 비명 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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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竹先生 작성일24-06-02 08:55 조회110회 댓글0건본문
▲上護軍昌寧曺氏上林之位(상호군창녕조씨상림지립)이라고 돼 있다. 위 설단(設壇)은 아래 조상림 아버지인 태복경(太僕卿, 종3품) 조흥(曺興) 설단(設壇)을 1991년 11월 27일 새로 건립하기 전 모습이다.
▲창녕조씨 태복경(昌寧曺氏 太僕卿) '조흥(曺興) 제단(祭壇, 設壇)'이다. 창녕군 고암면 간상리 산 111번지(29355㎡) 딱밭골에 있다. 위 설단 비석의 비명(碑銘, 비문)은 많은 부분에서 사실 관계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의없이 비문을 지은 것 등등 문제가 많은 비(碑)다. 들어내고 새로 건립해야 한다.
*블로그 '창녕조씨 태복경공 '조흥' 등 고려 문생진사시 동년록과 조상림-조명수!' 참조: https://blog.naver.com/antlsguraud/221431313081
中訓大夫 太僕卿 昌寧曺公 諱 興 設壇 碑銘 幷序(중훈대부 태복경 창녕족공 휘 흥 설단 비명 병서)
*태복경 조흥(曺興)공은 내 19대(20세) 할배다.
易經(역경)에 이르기를 積善之家(적선지가)에 必有餘慶(필유여경)이라했다. 착한 德(덕)을 쌓은 집안은 子孫(자손)이 그 餘澤(여택, 여덕)을 받는다는 말이니 昌寧曺氏(창녕조씨) 家門(가문)이 그러하다. 始祖(시조)는 諱(휘) 繼龍(계룡)으로 新羅(신라) 眞平王(진평왕) 駙馬(부마)며 昌寧府院君太師(창녕부원군태사) 벼슬에 이르렀다. 高麗(고려)에 들어 諱(휘) 謙(겸)은 太祖(태조)의 따님 德恭公主(덕공공주)에게 장가들어 太樂署丞(태악서승)을 지냈으니 이로부터 繁昌(번창)을 거듭해서 八代(8대) 平章事(평장사) 九(9) 少監(소감)이 輩出(배출)되었다.
특히 麗末(여말)에 中訓大夫太僕卿(중훈대부태복경)을 지내신 諱(휘) 興(흥, 태복시 경·卿 역임)은 위로는 임금의 信任(신임)을 받으시고 아래로 백성의 尊敬(존경)을 한몸에 지녀 閥閱家門(벌열가문)의 榮擧(영거, 영화)를 더욱 높이셨다. 配(배) 鄭氏(정씨) 父(부) 益周(익주)이시고 外祖(외조)는 判官(판관) 安東(안동) 權演(권인)이시다.
中祖(중조) 諱(휘) 自奇(자기, 태복경 흥 9대조)는(고려조 때인) 顯宗朝(현종조) 名臣(명신)이시고 그 後(후) 諱(휘) 瑀(우)에 이르러 長子(장자) 松茂 (송무) 次子(차자) 松君(송군)과 三子(삼자) 松鶴(송학) 三派(삼파)로 나눠졌으며 諱(휘) 松君(송군, 흥 6대조)이 다시 中祖(중조)가 된다. 公(공, 태복경 흥)의 曾祖는 少監公(소감공) 諱(휘)涉麟(섭린) 祖(조)는 侍郞公(시랑공) 諱(휘) 寔(식)이고 考(고)는 侍郞公(시랑공) 諱(휘) 旱雨(한우)시다.
(흥은) 세 아드님을 두셨으니 長子(장자) 桂林(계림, 절손됨)은 保功(보공, 종3품 보공 재직했다는 설 있음) 次子(차자) 上 林(상림)은 武堂上節制使上護軍(무당상절제상호군, 정3품)에 佐命原從功臣(좌명원종공신, 1411년(태종11) 83명 책록, 상림(上林) 이름 없음) 三子(삼자) 仲林(중림) 文科(문과) 少尹(소윤, 한성판윤이 맞음. 절손됨)으로 모두 顯達(현달)했다. 孫(손) 吉秀(길수, 계림 장남)는 萬戶(만호)이며 孫(손) 命壽(명수, 상림 장남)는 成均生員(성균생원) 贈(증) 兵曹參議(병조참의)이고, (태복경 흥) 曾孫(증손) 珣(순, 명수 장남)은 副司直(부사직) 贈(증) 吏曹參判(이조참판) 曾孫(증손) 琩(창, 명수 차남, 족보에 창(琩) 이름 외 그 어떤 기록이 없는데 굳이 새긴 게 의아함)은 道徳(도덕)이 높았고(근거 없음) 曾孫(증손) 璒(등, 명수 막내)은 通政(통정)으로 三陟府使(삼척부사)를 지내고 世祖(세조) 十三年(13년) 李施愛(이시애)의 亂(난) 忠簡公(충간공) 錫文(석문, 굳이 석문 등을 넣은 게 의아함. 삭제해야 함)의 從事官(종사관)으로 出征(출정)해서 큰 功(공)을 세워 兵曹參判(병조참판)에 贈職(증직)되고 武烈公(무렬공, 근거 없음)에 封(봉)해졌다.
(태복경 흥) 玄孫(현손) 繼權(계권, 순 장남)은 宣略將軍(선략장군)으로 忠愍公(충민공, 근거 없음)이고 繼衡(계형, 순 차남)은 文科(문과) 及第(급제)해 淸職(청직)을 歷任(역임) 戸曹參判(호조참판) 諡(시) 文貞公(문정공, 근거 없음)이며 또 漢弼(한필, 등 장남)은 文科(문과) 及第(급제)해 江原觀察使(강원관찰사)에 이르고 直節英風(직절영풍)으로 士類(사류)의 칭송을 받았다. (태복경 흥) 五代孫(5대(6세)손) 彥弘(언홍, 계형 장남)은 贈(증) 兵曹參議(병조참의) 彦博(언박, 계형 차남 겸 한필 양자)은 文科(문과)로 戶曹佐郞(호조좌랑) 贈(증) 副提學(부제학)이다.
(흥) 六代孫(6대(7세)손) 老彭(노팽, 계림 6세손 노팽은 1990년 근거 없이 족보 입적)은 操行(조행)이 高潔(고결, 근거 없음)했고 夢吉(몽길, 언홍 차남)은 尙州牧使(상주목사 역임 안함. 오류임) 贈(증) 左承旨(좌승지)며 夢說(몽열, 언홍 삼남)은 秉(겸) 節校尉(절교위) 夢臣(몽신, 언홍 사남)은 贈(증) 吏曹判書(이조판서) 夢祥(몽상, 언홍 오남)은 學德(학덕)이 높았고 夢尹(몽윤, 언홍 육남)은 贈(증) 通政掌隷院(통정장례원) 判決事(판결사) 夢楨(몽정, 언박 장남)은 出天之孝(출천지효)로 諡(시) 孝安公(효안공, 근거 없음) 贈(증) 議政府(의정부) 領議政(영의정)이고, 몽서(夢瑞, 언박 차남)는 德行(덕행, 근거 없음)이 있었다.
(태복경 흥) 七대孫(7대(8세)손) 應仁(응인, 몽길 장남) 王子師傅(왕자사부)로 府使(부사, 대구도호부사)이고 友仁(우인, 몽신 장남)은 文科(문과)로 通政(통정) 承旨(승지)였고 希仁(희인, 몽신 차남)은 文科(문과) 官(관) 郡守(군수, 합천군수) 倬(탁, 몽정 장남)은 號(호) 二養堂(이양당)으로 學問(학문) 經綸(경륜)이 높아 宣武靖難原從(선무정란원종, 임란 때 선조 호종(扈從) 공로로 1604년(선조37) 책록) 一等功臣(1등공신)에 贈(증) 領議政(영의정, 호조참판 재직한 걸 빼버렸음)이다(조탁 동생 형조좌랑 척(倜)이 빠졌음). 佶(길, 몽정 삼남)은 文科(문과)로 正郞(정랑) 衛聖原從功臣(위성원종공신, 임란 때 광해 호종 공로로 1614년(광해6) 책록)이고 健(건, 1556~?, 몽서 장남)은 號(호) 白墅(백서)로 牛溪 成渾(우계 성혼, 노론 계열인 최근덕이 굳이 건(健) 이름과 호(號)까지 비석에 새긴 건 서인(노론)의 좌장인 ‘우계 성혼’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으로, 우리 창녕조문(曺門)의 당색이 동인-북인-남인(청남)이라는 정체성과도 맞지 않는 모욕적임. 이런 황당한 걸 새기도록 허락한 우리 창녕曺門의 책임도 작지 않음. 삭제해야 함)先生(선생)의 門人(문인)이다. (특히 조탁 장남 이천부사 명욱(明勗)이 빠졌고, 명욱 아들 한성판관 실구(實久)도 비문에 빠졌음)
(태복경 흥) 八代孫(8대(9세)손) 挺生(정생, 응인 차남 겸 명인 양자)은 弘文舘(홍문관) 校理(교리, 근거 없음) 昌原府使(창원부사) 挺立(정립, 응인 장남)은 弘文館(홍문관) 校理(교리) 弼善(필선)을 지내고(정립이 정주목사 역임한 걸 빼버림), 挺英(정영, 응인 막내)은 宣傳官(선전관) 挺融(정융, 우인 장남)은 文科(문과)로 郡守(군수, 정선군수)挺芳(정방, 우인 차남)은 武科(무과)에 壯元(장원, 근거 없음) 時亮(시량, 정립 장남)은 文科(문과) 行(행) 梁山郡守(양산군수), (정생 장남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시일(時逸)도 비문에 빠졌음) (태복경 흥) 十二代孫(12대(13세)손) 夏龍(하용, 1990년 족보에 근거없이 입적한 계림 12세손)은 孝行(효행)으로 表彰(표창)되고 嘉善大夫(가선대부) 同知中樞府事(동지중추부사, 근거 없음)요 漢儒(한유, 정생 현손)는 有孝行(유효행), (태복경 흥) 十六代孫(16대(17세)손) 秉龍(병용, 몽상 11세손)은 文科(문과, 합격 근거 없음) 官(관) 通政大夫(통정대부, 근거가 없음)다.
上世(상세)도 赫赫(혁혁)하거니와 太僕卿(태복경, 흥)公(공)의 裔孫(애손)을 大綱(대강) 손꼽아도 이토록 繁盛顯達(번성현달)하거늘 애닯다. 外內分(외내분, 흥 부부)의 墓所(묘소)를 失傳(실전)하였으니 어찌 痛嘆(통탄)하지 않겠는가. 庚午年(경오년, 1990년) (합천군 묘산면 안성리) 道東齋(도동재) 門中(문중) 會議(회의)에서 神位(신위)를 設壇(설단) 奉安(봉안)하기로 合議(합의)하고서 永旭(영욱, 1990년 무후(无后, 曺鳳瑞) 쪽 양자로 입적. 父: 장현, 몽서 15세손) 永敦(영돈, 1990년 근거 없이 몽정 15세손으로 입적, 가손(假孫)임. 부: 문현, 언박-몽정-탁-명욱-실구 후손으로 입적) 두 분이 글을 請(청)하니
敢(감)히 이에 銘(명)하기를
나라忠誠(충성) 백성守護(수호) 積善(적선)으로 꽃피우고 밝은德性(덕성) 博施濟衆(박시제중) 餘慶(여경)으로 열매맺네 上代(상대)에선 閥閱甲族(벌열갑족) 八平章事(8평장사) 九少監(9소감)의 代(대)를이어 더욱顯達(현달) 太僕卿(태복경)에 中訓大夫(중훈대부) 子與孫(자여손)들 世代(세대)마다 구름마냥 旺氣(왕기)띠고 繼繼承承(계계승승) 몸바쳐서 愛國愛族(애국애족) 본받았네 崇慕(숭모)정성 여기모아 한뜻으로 받드노니 부디臨(임)해 맑은香氣(향기) 길이길이 배푸소서.
檀紀(단기) 四三二四年(4324년, 1991년) 辛未(신미, 1991년) 十一月(11월) 立冬節(입동절) 成均館(성균관) 前任(전임) 副館長(부관장) 儒學大學院長(유학대학원장) 成均館大學校(성균관대학교) 教授(교수) 慶州(경주) 崔根德(최근덕) 謹識(근지) 傍後裔(방후예) 圭溶(규용) 謹書(근서)
※경남 합천군 봉산면 노파리 출생인 경주최씨 최근덕(崔根德, 1933~2024, 일명: 최남백)은 노론계열의 인물이다. 그의 스승이 합천군 쌍백면 평구리 창수 정형규(蒼樹 鄭衡圭, 1880~1957, 초계정씨 대사성공파)다. 경주최씨광정공파(匡靖公派)인 최근덕은 성균관 관장 재직 때인 2013년 국고보조금과 성금 13억원을 횡령하여 옥살이했다.
*블로그 '좌부승지 창성군 조계형 연보' 참조: https://blog.naver.com/antlsguraud/220897955945